일요일, 12월 22, 2024
기타제품키오스크서 20분…"딸, 난 끝났나봐" 엄마가 울었다

키오스크서 20분…”딸, 난 끝났나봐” 엄마가 울었다

무인 단말기 앞에서 작아지는 고령자들
복잡한 단계·뒷사람 눈치…끝내 주문 실패
“고령자 노력과 제도적 지원 함께 필요해”

“자녀들의 인내심을 가진 도움, 부모들에게 절실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패스트푸드점 갔다 왔어.
-갑자기 왜?  

너 어렸을 때 가끔 손잡고 가서 먹은 게 생각나더라고.
-햄버거 맛있지~ 나도 먹고 싶다!  

그런데 못 먹었어.
-왜?  

키오스크 주문 어려워서. 20분 동안 헤매다가 그냥 나왔어.
-직원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직원들이 전부 바쁘더라고. 말 걸기 미안해서.
-뭐야 속상하게.  


-엄마 울어?  

“딸, 엄마 이제 끝났나 봐”



위 통화 내용은 해당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쳐〉트위터에 올라온 한 누리꾼의 경험담입니다.  

지난 7일 게재된 이 글은 지금까지 1만 7000회 넘게 리트윗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연에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키오스크’란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를 말합니다.  

점원 없이 손님 혼자서 물건을 주문하고 구매해야 합니다.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낯선 기계 앞에서 보내는 시간.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메뉴는 영어인 데다, 화면은 정신없고, 주어진 시간은 왜 이리 짧은지.  

뭘 눌러야 하나 찾다가 첫 화면으로 돌아가기 일쑤.  

사람이 붐비면 더 힘들어집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아직도 주문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너무 생소했고 그래서 잘 안 된 거고. 결국 부끄러운 게 아님에도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고령화 사회를 얘기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시간이 보다 많이 필요한 세대는 고려하지 않는다.”

“소외되는 인간을 만드는 기술발전이 싫다. 키가 작은 아이들, 익숙지 않은 노인들, 그리고 장애인들은 생각하지 않고 만든 것들.”

브라질에 있는 아들이 상황이 어려워 엄마와 카톡으로라도 화상통화을 자주하기 원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이 칠순을 넘은 엄마…

형제들은 엄마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계신 예전 접이식 헨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 드리고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다.
브라질 아들이 기다리다 얼마 후 들은 소식을 이랬다.

엄마가 헨드폰 벽에다 던져 버렸어.
엉? 왜?

복잡해서 모르시겠다면 화를 내면서 내동댕이 치셨어.


맘이 아팠다고 한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서럽고, 서글프고, 화나 나셨을까.
멀리 떠러져 있어 매일, 매시간 보고 싶다는 어머니가 아들을 화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셨을텐데 그래서 뭐라도 하려고 하셨을텐데..

그래서 이제는 형제들과 같이 계실 때 화상통화를 한다고 한다.

다양한 의견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사진-JTBC 뉴스룸 캡쳐〉

그중엔 고령자도 시대에 따라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다며 안 쓰고 말 게 아니라, 계속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배움의 의지보다 장치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무인 단말기 작동방식이 가게마다 다른 탓에 장치에 익숙해지려면 매번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용어에 외래어가 많고, 나이가 들수록 배움이 어렵다. 화면은 직관적이지 않고 한 화면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복잡한 걸 무조건 옳다고 주입식 교육할 게 아니라, 단순화해서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옳은 것 아닐까?”

“공공 웹사이트는 약자에 대한 접근성 가이드가 따로 있다. 키오스크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법제화가 필요하다.”

〈사진-JTBC 뉴스룸 캡쳐〉

■복잡한 단계·뒷사람 눈치…작아지는 고령자들

식당, 버스터미널, 대형마트, 은행.  

무인 단말기를 쉽게 볼 수 있는 곳들입니다.  

대부분 우리 생활과 가깝게 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여전히 사람이 더 익숙합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상주 직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무인 단말기를 이용했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사진-한국소비자원〉

불편한 점으로는 주문 단계 복잡, 조작의 어려움, 뒷사람 눈치, 잘 안 보이는 그림과 글씨 등을 꼽았습니다.  

실제로 고령자 10명의 무인 단말기 이용을 지켜봤더니 절반은 끝내 주문 혹은 구매하지 못했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대부분 영문 등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작동 방식에 어려움을 보였습니다.  

시간 지연이나 주문 실패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도 느꼈습니다.  

〈사진-JTBC 뉴스룸 캡쳐〉

■”고령자 노력과 제도적 지원 함께 필요해”

그렇다고 어르신들이 무인 단말기를 마냥 피하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도 노력할 테니 함께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소비자원이 무인 단말기 증가에 대한 고령자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고령 소비자의 노력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기술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고령 소비자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필요한 도움으로는 전담직원이나 호출용 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위) 조사대상 12곳 모두 직원 호출용 벨 등 고령자용 보조수단이 없었고, 1곳에는 화면 내 ‘장애인용 호출’ 버튼이 있었음. (아래) 고령자용 화면을 제공하는 매장은 없었고, 2곳에서는 ‘돋보기 기능’을 제공해 화면 일부를 선택하면 크게 볼 수 있었음. 〈사진-한국소비자원〉무인 단말기와 같은 비대면 거래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겁니다.  

소비자원은 이에 따른 고령자 지원이 필요하다며 방안을 내놨습니다.  

일단 사업자에게 무인 단말기 운영 개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직원 호출용 벨을 설치하고,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게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관련 부처에는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 개정을 건의했습니다.  

고령자용 화면 제공과 충분한 버튼 크기 등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또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비대면 거래 관련 교육도 자체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엄마와 키오스크’ 사연에 달린 한 댓글에도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과 언어를 몇 세대나 건너 배우는 데는 그만큼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해와 배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혜은 기자 (yu.hyee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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